삶의 끝에서 우리가 묻는 질문, ‘어떻게 떠날 것인가’
- well-to-do73003
- 8월 8일
- 2분 분량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아직은 아닐 것’이라며 외면하거나, 혹은 두려움에 애써 침묵합니다. 하지만 삶의 끝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단순한 죽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얼마나 의미 있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우리 사회는 점차 ‘잘 사는 삶’에서 ‘잘 마무리하는 삶’으로 인식의 전환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중년 이후 성인들에게 있어 이 주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모님의 임종을 경험하거나, 스스로의 건강을 돌아보게 되는 시점에서 ‘좋은 죽음’에 대한 고민은 현실이 됩니다.
그렇다면 좋은 죽음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고통 없이 떠나는 것, 가족들에게 부담을 남기지 않는 것,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생의 끝을 선택하는 것. 사람마다 정의는 다르겠지만, 그 중심에는 ‘존엄’이라는 공통된 가치가 존재합니다. 단지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중요해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의료 시스템은 여전히 ‘끝까지 치료’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회복 가능성이 희박해도 수술과 시술은 반복되고, 의료진은 “혹시 모를 기적”을 얘기하며 가족들의 결정에 무게를 지웁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과, 그로 인한 고통을 지켜보는 괴로움 사이에서 가족들은 깊은 갈등을 겪습니다.
더욱이 환자 본인의 의사는 자주 배제됩니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가족이 대신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이 ‘과연 그분의 뜻이었을까’라는 후회와 죄책감으로 남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입니다. 내가 명확하게 남긴 의사가 의료 현장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장치입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단순히 치료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내 삶의 마지막을 나답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리하겠다는 의지이자, 가족들에게도 ‘이건 내 결정이니 미안해하지 말라’는 마지막 배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작성률은 낮고, 관련 정보는 부족하며, 많은 이들이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칩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단순히 유서를 쓰거나 재산을 정리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떠나고 싶은가’ ‘내가 더는 결정할 수 없는 순간에, 무엇이 나를 대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미리 답을 내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의미 있는 죽음은 곧 의미 있는 삶에서 비롯됩니다. 아프지 않게, 외롭지 않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을 나눌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사전에 준비하고, 논의하고, 기록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하는 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후회 없는 마무리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느 시점에 있든, 이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어떻게 떠나고 싶은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오늘이 더욱 단단해지고 깊어집니다. 지금, 삶의 끝을 미리 마주보는 용기를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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